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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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과 오산학교
(1917~1919)
오산학교에서 수학하다.

한경직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한경직은 오산학교를 졸업하던 1919년 봄에 3·l 운동이 일어나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졸업식을 못한 채 학교를 떠나야 했다.

고당 조만식
(1917~1919)
좋은 스승을 만나 민족의식을 갖다.

한경직은 남강 이승훈 선생과 교장인 조만식에게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아 철저한 애국애족 정신과 기독교 신앙, 현대 학문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숭실대에서 과학수업
(1921~1925)
숭실대에서 과학교육을 받다

한경직은 나라를 구할 길은 발전된 현대과학기술을 배움에 있다고 여겨 한국 최초의 4년제 대학이자 국내 유일의 대학 이었던 숭실대학 이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매 학기 최우수 성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숭실대에서 과학수업
(1921~1925)
뛰어난 웅변가로 훈련 받다.

한경직은 당시 유행하던 웅변대회에 자주 참가하였다.
때론 외부 웅변대회에 숭실대학을 대표하여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는 후에 한경직이 뛰어난 설교가가 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방위량 선교사
(1921~1925)
선교사들과 교분을 갖다.

한경직은 평양에서 활동하던 여러 선교사들과 교류를 하였다.
특히 방위량선교사의 비서로 여러 책과 배포하는 일을 도우면서 교회행정과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황해도 소래해변
(1923)
소래해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한경직은 대학 3년 선교사 휴양소가 있던 소래 해변에서 홀 로 기도하던 중 “너는 온전히 나에게 몸을 바쳐서 복음을 위해 살아라”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경직은 과학도로서 민족을 선진화하여 나라의 독립을 이루려던 뜻을 바꾸어, 정신분야에서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에게 기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