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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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집회
(1984)
기독교100주년 사업을 이끌다.

기독교 전래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경직은 한국교회가 연합한 기념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그는 100만명이 모인 세계기독교에 유례가 없었던 기념비적 인 집회에서 ‘받는 한국교회’에서 ‘주는 한국교회’로의 전환을 선언하였다.

태극기 앞에서 설교
(1965~2000)
군 복음화에 힘쓰다

한경직은 은퇴 후에 군복음화 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올바른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 유물론인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국가관, 애국심, 이웃사랑, 협동과 희생정신 고취를 통해 젊은이들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한 좋은 방편으로 군복음화에 힘쓴 것이다.

케냐 나이로비 선교대회
(1969년경)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도 힘쓰다

한경직은 민족복음화를 추구해 나가면서도 세계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회교국, 불교국이 대부분인 동남아의 복음화를 한국교회에 부여된 사명으로 생각하여 아세아교회진흥원을 세웠으며, 밥 피어스와 빌리 그래함 등과 함께 세계 여러 곳에서 전도집회를 열어 세계복음화에 이바지하였다.

템플턴상 수상 연설
(1992)
세계적인 종교인으로 인정받다.

한경직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 상을 받았다. 그는 상금 전액(102만불)을 받은 즉시 북한선교헌금으로 영락교회에 기탁하였다. 템플턴 재단은 그가 선교의 상징적 인물이며, 교육가와 사회봉사자로서 크게 기여하였고, 나라가 위험할 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한 것을 그 수상이유라고 하였다.

기도하는 모습
(1973~2000)
청빈한 기도의 삶을 살다.

한경직은 대형교회의 목회자였지만 평생 집 한 채 통장 하나 가지지 않은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은퇴 후 6 여평 남짓의 국민주택의 한 방을 거처로 삼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민족, 남북통일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