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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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포리아대학 졸업장(1926)
엠포리아대학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하다.

방위량 선교사의 주선과 윤치호의 도움(배삯)으로 엠포리아대학에 입학하였다. 엠포리아 대학은 매일 채플을 드려 학장과 학감을 비롯해 교수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했으며, 신앙과 일반 학문을 균형 있게 교육하는 학교였다. 한경직은 이곳에서 심리학과 윤리학, 역사와 철학 등을 공부했다.

프린스턴신학교 전경
(1926~1929)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목회자로 훈련 받다

한경직은 그 당시 미국 북장로교 소속 신학교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그는 역사 깊은 교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들로 구성된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평생 동안의 사역에 필요한 토대를 갖췄다.

미국 유학 중
(1925~1929)
이국 땅에서 5년간 열심히 공부하다.

프린스턴 재학시절 학비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 로 감당하였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설교상을 받기도 하고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매우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알버커키 요양소에서
(1931)
폐결핵으로 2년 반 동안 치료 받다.

한경직은 프린스턴 졸업후 예일 대학의 박사 과정에 진학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치명적이었던 폐결핵에 걸려 2년동안 치료를 받고 다시 6개월간 알버커키 요양원의 요양을 거쳐 완쾌 받을 수 있었다.

프린스턴신학교 교정에서
(1931)
조국을 위해 일하기를 결심하다.

한경직은 폐결핵 치료과정에서 하나님께 “단 3년 만이라도 조국을 위해 일하게 해 달라”며 매달렸고,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새롭게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어 죽음의 고비로부터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