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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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제2교회 전경
(1933~1942)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다.

귀국 후 한경직은 가난하고 교회 건물도 없지만 장래성 있는 청년들이 많고 할 일이 많은 신의주제2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고 민족의식의 고취와 구체적인 애국의 길을 제시했다.

신의주보린원 가족일동
(1944)
사회복지 사역을. 시작하다

한경직은 전도, 교육, 봉사를 사역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신의주 제2교회 목회 당시 ‘복순’이라는 어린 고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고아들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보린원과 양로원을 설립해 봉사사업에 더욱 힘썼다.

영락교회 착공 머릿돌
(1945)
남하하여 영락교회를 세우다.

해방 후 소련 공산당의 탄압으로 피신한 한경직은 1945년 12월 2일에 서울 영락교회를 세웠다. 그는 우리 민족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죄와 무지, 그리고 가난으로 보았고, 영락교회를 통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전도, 교육, 봉사를 목표로 정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전쟁 중 영락교회
(1950~1953)
전쟁 중에 나라와 이웃을 위해 일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경직은 피난 중에도 교회와 복지기관을 세워 피난민들을 돌보았다. 또한 민간외교활동으로 미국 정치권으로부터 유리한 결정과 해외로부터 구호활동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유엔사절단의 일원
(1950년대)
민간외교 활동 등 애국활동을 하다

한경직은 영어에 능통하고 한국에 우호적인 미국친구들과 유력 인사를 많이 알고 있었다. 이를 활용하여 UN사절단으로 활동하는 등 조국을 위한 다양한 민간외교활동을 하였다. 그 외 신의주자치위원회, 대한기독교구국회 활동 등 정치,사회에 걸친 애국활동을 하였다.

지역전도집회
(1956)
민족복음화를 위해. 힘쓰다

한경직은 우리 민족을 기독교 정신을 통해 깨우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 민족복음화의 기치를 걸고 다양한 전도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밥피얼스, 빌리그래함 등을 초청하여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대광학교 정초식
(1961)
여러 학교를 설립 및 재건하다

한경직은 교육사업에도 힘을 써 새로운 학교를 세우고, 북한에서 폐교된 여러 학교를 재건하여 나라에 봉사할 일꾼들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