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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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한도풍
(1902~1914)
인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인자하신 모습밖에 없다.
성품도 온유하셨지만 목소리도 부드럽고 얼굴도 인자하셨다.
백부와 달리 술을 하실 줄도 모르고 자식들을 책망하실 줄도 몰랐다.
우리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어 그것이 못내 안쓰러워 그러셨는지 모르겠다.
” (구술자서전 ‘나의감사’ 중)

마포삼열 선교사
(1900년대)
동네에 복음이 전파되다

한경직이 태어나기도 전인 1890년대 말 어느 날 평안도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마포삼열 선교사가 하루는 길을 잃어 한경직이 태어나고 자란 ‘자작마을’에 오게 되어 기독교를 전하게 되었고, 그 후 그곳엔 자작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
(1905~1910)
어렸을 때 처음 접한 성경구절

한경직은 같은 마을에 사는 오촌 숙부댁 대문에 크게 써 붙어있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접하며 처음으로 한글을 익히게 되었다.
이 성경말씀은 평생동안 그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일제시대 소학교 모습
(1910~1916)
소학교에서 교육 받다.

한경직은 아버지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한문을 배우는 서당을 포기하고, 마포삼열 선교사가 세우고, 자작교회가 운영한 진광 소학교에 들어가, 신학문과 기독교 정신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