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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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1918년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난 빌리 그래함은 플로리다 신학교와 휘튼대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에 침례교 목사가 되었고 1949년에 개최된 LA전도대회 때 많은 군중을 모아 크게 성공함으로써 대부흥사로 급부상하였다.

그 후 세계적인 부흥목사로서 신문·방송 등 매스컴과 해외 순회를 통한 전도사업에 열성을 보여 왔다.
그는 한국에서도 1952년 12월, 1973년 5월과 1980년 8월 등 여러 차례 복음화 집회를 가졌다.
1992년과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선교집회를 갖기도 했다.

빌리 그래함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의 깊은 교분으로도 유명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조언자로서 개인적 만남이나 기도모임을 가져왔다.
그는 지난 70여 년간 전 세계 125개국에서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다.
그는 역사상 존재한 기독교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한 목회자였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그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22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82년에 템플턴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마지막 공개 설교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어트에 위치한 산속의 집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경직과 빌리 그래함

6ㆍ25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에 빌리 그래함은 한국을 방문해 부산과 서울 등지에서 전도대회를 가졌다.
그는 750명의 선교사들과 수천 명의 미군들, 한국인들에게 설교하기도 하고, 한국의 목사들을 따로 만나 격려하기도 했다.
이때 통역을 맡은 이가 한경직이었다.

한경직과 빌리 그래함은 영락교회가 부지 문제로 재정적인 압박을 받게 된 사건으로 인해 더욱 가까워졌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한경직은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와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벌였으나 별로 성과가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는 마지막으로 밥 피어스를 찾아갔다.
밥피어스는 함께 월드비전을 세운 동역자이자 친구이지만 영락교회 문제로 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찾아가기를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밥 피어스는 도리어 한경직이 얘기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었고, 그를 빌리 그래함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빌리 그래함은 그가 인도하는 전도집회 때마다 한경직이 영락교회의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전도집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이제 막 전쟁이 끝난 한국의 어려운 교회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며 헌금해 주었고, 모금된 돈으로 한경직은 영락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 한경직은 빌리 그래함, 밥 피어스와 함께 전 세계를 다니며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